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학입학 학력고사 (문단 편집) == 소개 == || [[파일:6. 1981.12.30. 조선일보 82학년도 학력고사 배치표.png|width=80%]] [br] ,,1982학년도 첫 회 학력고사 배치표([[조선일보]] 1981년 12월 30일자 기사),, || [youtube(HlDxm53stV0)] {{{+1 [[大]][[學]][[入]][[學]] [[學]][[力]][[考]][[査]]}}} 1981년부터 1992년까지, 즉 1982학년도[* 1969학년도부터 전해인 1981학년도까지 실시됐던 [[대학입학 예비고사]]가 사실상 이름만 바꾼 것이다. 하단의 유래와 역사항목 참조해서 보기 바람.]부터 1993학년도까지 시행됐던[* 대다수의 1963년 3월 출생자~1975년 2월 출생자들이 봤다.] 전국 규모의 대학 입학/교육 적격자 선발 시험이다. 현재의 대수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인문/자연계(문/이과)구분이 폐지된 제7차 고등학교 교육과정[*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이 시행된 2002년 '''이전'''에 시행되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계열별 분리가 이루어졌다. 필기 시험 320점에 [[체력장]] 20점[* 건강에 별 문제가 없다면 대부분 19~20점을 받았다. 즉, 실질적인 점수 차이가 없어 사실상 비중이 매우 낮았다. 특히 고3 체육시간에는 체력장 종목을 집중 훈련시켰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몸이 약하거나 장애인 학생들인 경우 체력장 때문에 불공평한 것 아니냐라는 논란이 한 때 있었지만, 기본 점수 15점을 주고, 응시 의사만 있다면 16점을 주는 식으로 무마되었다. 고3이 되면 예체능 과목을 자습으로 때우던 학교 현실에서 체육시간에 오래달리기라도 시켜주니 수험생 체력관리에 긍정적 효과가 없지 않았다.]을 합하여 340점 만점으로 구성되었다. 1982학년도부터 1987학년도까지(1981~1986년)는 선 시험 후 지원 방식이었다. 즉, 먼저 학력고사를 본 후 그 점수 가지고 대학을 지원했으며(현 수능 정시 모집과 유사), 1988학년도부터 1993학년도까지는 선 지원 후 시험 방식이었다. 즉 먼저 지망 대학을 지원한 다음 시험 결과를 봐서 당락을 결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